해파랑길 코스 고르는 법 — 45개 코스를 거리·시간·난이도로 줄 세워 봤습니다
가을은 해파랑길의 계절입니다. 여름에는 그늘이 없어 뜨겁고 한겨울에는 바람이 매서운 동해안 해안길이,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는 걷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 됩니다.
그런데 막상 검색해 보면 “해파랑길 750km, 50개 코스”라는 문장만 나오고, 정작 어느 코스부터 걸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750km를 통째로 걸을 사람은 거의 없는데, 안내는 750km 기준으로 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축제모아가 가진 공공 걷기길 데이터에서 해파랑길 코스를 전부 꺼내 거리·소요시간·난이도로 줄을 세워 봤습니다. 데이터에 담긴 것은 45개 코스, 합계 648km입니다. 세어 보니 예상 밖의 숫자가 나왔습니다. 거리가 짧은 코스가 오히려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었고, 코스 소요시간을 역산하면 기준 속도가 시속 4km가 아니라 시속 2.8km였습니다. “10km니까 두 시간 반이면 되겠지” 하고 계획하면 거의 확실히 어긋납니다.
해파랑길의 실제 단위는 750km가 아니라 ‘코스 하나’입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끝나는 동해안 종주길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코리아둘레길 가운데 가장 먼저 완성된 노선이고, 공식 안내는 50개 코스·약 750km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걷는 방식은 주말마다 코스를 한두 개씩 끊어 걷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에 필요한 숫자는 총거리가 아니라 코스 하나의 크기입니다. 데이터에 들어 있는 45개 코스를 집계하면 이렇습니다.
- 코스 평균 거리 14.4km, 평균 소요시간 314분(5시간 14분)
- 가장 긴 코스 — 25코스(경북 울진) 23km · 8시간 30분
- 가장 짧은 코스 — 30코스(강원 삼척) 7km · 2시간 30분
- 난이도 분포 — 쉬움 21개 · 보통 21개 · 어려움 3개
- 45개 코스 전부 비순환형(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름)
평균이 14.4km에 5시간대라는 건 코스 하나가 곧 하루 일정이라는 뜻입니다. 아침에 출발해 중간에 점심을 먹고 오후에 도착하면 딱 맞습니다. 반대로 “하루에 두 코스”는 짧은 코스끼리 붙일 때만 현실적입니다.
거리만 보면 속습니다 — 9km짜리가 5시간 30분
가장 놀란 숫자는 36코스였습니다. 강릉 정동진역에서 출발하는 이 코스는 거리가 9km밖에 안 되는데 소요시간이 330분(5시간 30분)으로 잡혀 있습니다. 역산하면 시속 1.64km, 걷기라기보다 등산에 가까운 속도입니다.
이유는 코스 설명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정동진역에서 183고지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지나 괘방산 등산로를 넘어 안인해변으로 내려오는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난이도도 ‘어려움’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난이도 ‘어려움’은 45개 중 3개뿐인데, 셋 다 성격이 같았습니다.
- 6코스(울산 남구) 16km · 6시간 30분 — 덕하역에서 태화강전망대까지, 함월산을 오르는 산길이 대부분
- 22코스(경북 영덕) 16km · 6시간 30분 — 축산항에서 고래불해변까지, 대소산 봉수대를 넘음
- 36코스(강원 강릉) 9km · 5시간 30분 — 정동진역에서 안인해변까지, 괘방산 등산로 통과
공통점은 이름은 해안길인데 실제로는 산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해파랑길이라고 해서 전부 백사장 옆 평지가 아닙니다. 코스를 고를 때 순서는 난이도 → 소요시간 → 거리여야 합니다. 거리를 먼저 보면 36코스처럼 “9km면 가볍겠네”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소요시간은 시속 2.8km 기준으로 적혀 있습니다
45개 코스의 거리를 소요시간으로 나눠 보면 중앙값이 시속 2.77km입니다. 가장 빠르게 잡힌 코스도 3.25km/h, 가장 느린 코스는 앞서 본 1.64km/h였습니다.
보통 성인의 평지 보행 속도는 시속 4~5km입니다. 그런데 공식 소요시간은 그보다 훨씬 느린 기준으로 잡혀 있습니다. 이건 데이터가 과장된 게 아니라, 쉬는 시간·사진 찍는 시간·모래사장과 오르막에서 느려지는 것까지 포함한 현실적인 숫자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실제로 해안 코스는 백사장 구간에서 체감 속도가 절반 가까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울 때는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거리 ÷ 2.8 = 걷는 시간(시간 단위). 14km면 5시간, 18km면 6시간 반입니다. 여기에 식사와 교통 대기 1~2시간을 더하면 하루가 다 갑니다.
지역별로 코스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45개 코스를 시도별로 묶으면 이렇게 갈립니다.
- 경북 19개 코스 · 297km — 경주·포항·영덕·울진 (집계 거리의 46%)
- 강원 19개 코스 · 237km — 삼척·동해·강릉·양양·속초·고성
- 울산 5개 코스 · 83km
- 부산 2개 코스 · 31km
흥미로운 건 코스 수는 경북과 강원이 19개로 똑같은데 거리는 경북이 60km 더 길다는 점입니다. 코스당 평균으로 보면 경북 15.6km 대 강원 12.5km입니다. 강원 구간이 더 잘게 쪼개져 있다는 뜻인데, 그만큼 항구와 마을, 볼거리가 촘촘하게 붙어 있어 끊어 걷기 좋게 나뉜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면 성격이 이렇게 나뉩니다. 부산·울산 구간은 도심과 바다가 붙어 있어 접근성이 가장 좋고, 경북 구간은 항구와 어촌이 길게 이어지는 본격 해안길, 강원 구간은 짧은 코스가 많아 초보자와 당일치기에 유리합니다. 처음 걷는 분이 강원 구간부터 시작하는 게 유리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이 세 코스 — 11km 이하 · 난이도 쉬움
45개 중 11km 이하인 코스는 9개인데, 그중 난이도가 ‘쉬움’인 것만 남기면 세 개입니다.
- 43코스(강원 양양) 9km · 3시간 30분 — 하조대해변에서 동호해변을 지나 수산항까지. 인적이 드문 해안길이고 서퍼들이 찾는 동호해변을 지납니다.
- 47코스(강원 고성) 10km · 3시간 30분 — 삼포해변에서 송지호 철새관망타워와 왕곡 한옥마을을 거쳐 가진항까지.
- 31코스(강원 삼척) 10km · 3시간 30분 — 궁촌 레일바이크역에서 덕산해변까지. 도로·둑길·어촌을 번갈아 지납니다.
세 코스 모두 3시간 반이면 끝나서 오전에 걷고 점심 먹고 돌아오는 일정이 됩니다. 특히 47코스는 해변·석호(송지호)·14세기부터 형성된 한옥마을(고성 왕곡마을)이 10km 안에 다 들어 있어, 걷기와 관광을 한 번에 하고 싶은 분께 맞습니다.
가장 짧은 30코스(삼척 7km · 2시간 30분)는 난이도가 ‘보통’인데, 용화 레일바이크역에서 궁촌 레일바이크역까지 낮은 언덕을 넘기 때문입니다. 대신 30코스와 31코스를 이어 걸으면 17km · 6시간짜리 하루 코스가 만들어집니다. 중간에 황영조 기념공원과 해신당공원을 지나는 구간입니다.
차 없이 걸으려면 ‘역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고릅니다
해파랑길의 진짜 난관은 걷는 게 아니라 끝난 자리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45개 코스가 전부 비순환형이라 도착지에서 다시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데, 동해안 어촌 구간은 배차 간격이 넓습니다.
그래서 코스 설명에 기차역·터미널이 직접 등장하는 코스를 따로 뽑아 봤습니다.
- 33코스(강원 동해) 14km · 4시간 30분, 쉬움 — 추암해변에서 출발해 동해역을 지나 묵호역 입구에서 끝남
- 34코스(강원 동해) 15km · 5시간, 쉬움 — 묵호역에서 이어짐
- 35·36코스(강원 강릉) — 정동진역 기점 (단, 36코스는 난이도 어려움)
- 5·6코스(울산) — 덕하역 기점 (6코스는 난이도 어려움)
- 20·24·25·28코스(경북 영덕·울진) — 시외버스터미널 기점
이 중 33코스가 초보자에게 가장 추천할 만합니다. 난이도 ‘쉬움’에 14km, 그리고 시작점과 끝점이 모두 기차역 근처라 기차로 가서 걷고 기차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촛대바위와 형제바위가 있는 추암해변에서 출발해 묵호역에서 끝나는 그림도 좋습니다.
코스별 출발·도착 지점과 주변 볼거리는 해파랑길 코스 안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걷기길과 길이를 비교하고 싶다면 전국 걷기길 1,587개를 거리로 줄 세운 글이나 부산 갈맷길도 함께 보시면 감이 잡힙니다.
가을에 걷는다면 계산해야 할 두 가지
첫째, 동해안 해안길은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여름에 이 길이 힘든 이유이자 가을에 좋은 이유입니다. 다만 10월 중순을 넘기면 동해안 특유의 바람이 시작되므로, 체감온도가 기온보다 훨씬 낮습니다. 바람막이는 계절과 상관없이 챙기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일몰 시각입니다. 10월 말 동해안 일몰은 대략 오후 5시 30분 전후입니다. 5시간짜리 코스를 오전 10시에 출발하면 오후 3시에 도착해 여유가 있지만, 낮 12시에 출발하면 도착 무렵 이미 어둑해집니다. 해안 구간은 가로등이 없는 곳이 많으므로 출발 시각을 도착 시각에서 거꾸로 계산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가을 동해안은 축제도 많은 시기입니다. 같은 주말 인근에서 열리는 축제가 있는지 전국 축제 모아보기에서 확인하면 걷기와 축제를 하루에 묶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50코스는 끝까지 걸어갈 수 없습니다
완주를 목표로 하신다면 이건 미리 아셔야 합니다. 마지막 50코스(강원 고성, 11km · 4시간)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시작해 명파해변과 제진검문소를 지나 통일전망대에서 끝나는데, 제진검문소부터 통일전망대까지는 도보 통행이 금지돼 있고 차량으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즉 해파랑길 종주의 마지막 구간은 걸어서 도달하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가는 구간입니다. DMZ 접경 지역이라 출입 신고 절차와 시간 제한이 따로 있고, 동해안 최북단 명파해변은 한시적으로만 개방됩니다. 이 구간만은 출발 전에 출입 가능 여부와 운영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가셔야 합니다.
일정이 어긋나지 않게 짜는 다섯 가지 원칙
지금까지 본 숫자를 실제 계획으로 옮기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 난이도를 가장 먼저 봅니다. ‘어려움’은 거리와 무관하게 등산에 준하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9km라도 5시간 30분입니다.
- 거리 ÷ 2.8로 시간을 계산합니다. 시속 4km로 계산하면 반드시 늦습니다. 여기에 식사·교통 대기 1~2시간을 더합니다.
- 돌아올 방법을 먼저 정합니다. 45개 코스 전부 비순환형이라, 도착지에서 대중교통이 끊기면 대안이 없습니다.
- 첫 코스는 11km 이하 · 난이도 쉬움에서 고릅니다. 43·47·31코스가 여기 해당합니다.
- 물과 간식은 출발 전에 삽니다. 해안 구간에는 편의점이 몇 km씩 없는 곳이 있습니다. 특히 영덕·울진 구간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1코스부터 순서대로 걸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습니다. 1코스(오륙도 해맞이공원~해운대)는 17km에 6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입니다. 이기대 해식절벽과 광안대교를 지나는 경치는 해파랑길 전체에서 손꼽히지만, 첫 코스로 삼기에는 꽤 깁니다. 접근성이 좋은 33코스나 짧은 43코스로 감을 잡은 뒤 1코스를 걷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데이터에 대해 — 이 글의 거리·소요시간·난이도 숫자는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하는 전국 걷기길 정보를 축제모아가 내려받아 직접 집계한 것입니다. 집계 시점 기준으로 해파랑길은 45개 코스(합계 648km)가 담겨 있었고, 공식 안내인 50개 코스·약 750km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3·9·32·37·38번 코스는 공개 데이터에 항목이 없어 이 글의 평균과 합계에서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경북 297km” 같은 구간 합계는 실제보다 작게 잡힌 값이며, 절대값보다 코스 간·지역 간 비교용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소요시간도 데이터에 기재된 표준값이라 실제 걷는 속도·휴식·날씨에 따라 달라집니다. 난이도 역시 기관이 부여한 값이어서 개인 체력과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걷기길은 정비 공사·산불·기상으로 구간이 우회되거나 통제되는 일이 잦습니다. 출발 전 두루누비(durunubi.kr)와 해당 지자체 공식 안내에서 최신 통제 정보를 확인하시고, 50코스는 군 작전 상황에 따라 출입이 제한될 수 있으니 특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